모든 학생이 음악을 배운다. 나의 음악적 재능은 마이너스 무한대이지만, 당연히 나도 음악을 배웠다.
우리가 음악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적어도 언젠가 한번은 음악을 듣고 위안을 얻었거나, 즐거움을 느꼈거나, 주변의 사람들과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들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과학이 그렇고 또 인문학이 그렇다. 아마도 그 부채감 때문에, 사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기계적인 능력 배양이 가장 중시되는 현대적인 교육이라는 틀에도 예술, 과학, 인문학이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음악에 사용되는 악보라는 문서는 음악을 표현하는 멋진 도구이다. 물론 악보를 볼 줄 몰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악보는 연주라는 행위로 음악을 사람들에게 현실로 만들어주는 사람과, 그 음악이 가지게 될 중대한 (그 부채감을 유발하는) 가치를 창작해내는 사람들, 즉 작곡가와의 인터페이스이다.
한편,
소프트웨어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요즘 우리는 공기 반 소프트웨어 반으로 숨 쉰다.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 역시 사람들에게 예술, 과학, 인문학에 못지 않은 중요한 무언가라는 뜻이다. 소프트웨어는 모든 방면에서 우리의 삶을 좀 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며, 현실에서 전혀 가능하지 않은 것을 할 수 있게도 해 준다. 문제는, 그 소프트웨어가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급속하게 발전한 나머지, 사람들이 그 가치로움에 공감하기 전에, 또 막연한 부채감을 느끼기 전에, 예술, 과학, 그리고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서 만들어진 많은 가치들을 현실로 구현하고 또 그 가치들을 지켜주는 아주 중대한 도구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왜 코딩을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하는지에 대하여 질문을 많이 한다.
내가 언제 악보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나서 페이스북에 요즘 학교에서 언제 악보 보는 법을 배우는지에 관한 질문을 올렸더니.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악보라는 것을 보고 음악을 배운다고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피아노 학원에서 악보를 보게 된다고 했다.
내가 작곡가나 연주가가 되지 않아도, 또 전문적인 가수가 아니라도 악보를 대개 볼 수 있듯이, 프로그래밍도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 악보와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전문적인 개발자가 아니라도, 지금 이 세상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와 더 나아가 내가 만들어내고자 하는 모든 가치들을 알리고 구현하는 가장 도구인 소프트웨어와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으로 느끼고 배우는 것은 의미롭다.
소프트웨어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구사, 즉 코딩을 통해서 구현된다. 물론 프로그램 언어를 몰라도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다. 악보를 볼 줄 몰라도 노래를 할 수 있듯이. 우리가 어디선가 들었던 노래를 흥얼거리고, 또 어디선가 본 듯한 형상을 종이에 끄적거리고, 또 우리가 만지는 모든 물건들의 과학적 배경이 있듯이, 이제 모든 것의 뒤에는 소프트웨어가 있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사람들이 있다. 소프트웨어를 이해하고 코딩을 배우는 것은, 아직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지 않은 부채감을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출처: 이민석 교수님 블로그 http://hl1itj.tistory.com/125